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대부분의 일반적인 러너는 “이번에는 이 정도 시간으로 달리자”라고, 미리 개인적 목표를 정해 레이스에 임한다. 그 시간 안에 달릴 수 있다면, 그 또는 그녀는 ‘뭔가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으며, 만약 그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뭔가를 달성하지 못했다’라는 것이 된다. 만약 시간 내 달리지 못했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실력을 발휘했다는 만족감이라든가, 다음 레이스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면, 또 뭔가 큰 발견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하나의 달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끝까지 달리고 나서 자신에 대한 자부감(혹은 프라이드와 비슷한 것)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이 장거리 러너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 1장 – 누가 막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 (25p)
  • 나는 물론 대단한 마라톤 주자는 아니다. 주자로서는 극히 평범한-오히려 그저 평범한 주자라고 할 만한-그런 수준이다. 그러나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 (27p)
  • 누군가로부터 까닭 없이(라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비난을 받았을 때, 또는 당연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때, 나는 언제나 여느 때보다 조금 더 긴 거리를 달리기로 작정하고 있었다. 여느 때보다 더 긴 거리를 달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신을 육체적으로 소모시킨다. 그리고 나 자신이 능력에 한계가 있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가장 밑바닥 부분에서 몸을 통해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느 때보다 긴 거리를 달린 만큼,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의 육체를 아주 근소하게나마 강화한 결과를 낳는다. 화가 나면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 분풀이를 하면 된다. 분한 일을 당하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단련하면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 (41p)
  • 개인적인 얘기를 한다면, 나는 ‘오늘은 달리고 싶지 않은데’하고 생각했을 때는 항상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너는 일단 소설가로서 생활하고 있고, 네가 하고 싶은 시간에 집에서 혼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만원 전철에 흔들리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다. 그건 행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에 비하면 근처를 1시간 달리는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는가? 만원 전철과 회의의 광경을 떠올리면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의지를 북돋아 러닝슈즈의 끈을 고체 매고 비교적 매끈하게 달려나갈 수 있다. ‘그렇고말고. 이정도도 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거야’하고 생각하게 된다.
    – 2장 –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76p)
  • 만약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달리는 연습을 중지한다면 틀림없이 평생 동안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한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 4장 – 나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116p)
  • 세상에는 때때로 매일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 “그렇게까지 해서 오래 살고 싶을까” 하고 비웃듯이 말하는 사림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지만 오래 살고 싶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을 실제로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훨씬 많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같은 10년이라고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ㅇ녀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줄 것으로 믿는다.
    – (128p)
  • 무리를 해서 계속 달리는 겁소다는 어느 정도 걷는 쪽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많ㅇ느 주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다리를 쉬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휴식은 착실하게 취했다. 그러나 걷지는 않았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그 때문에-그 목적 하나를 위해-비행기를 타고 일부러 일본의 북녘 끝까지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 6 장 – 이제 아무도 테이블을 두드리지 않고 아무도 컵을 던지지 않았다 (172p)
  • 물론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웠고 정신적으로 물속에 푹 가라앉아버릴 것 같은 측면도 때떄로 있었다. 그러나 ‘고통스럽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스포츠에 있어서는 전제 조건과 같은 것이다.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소프초에 도전할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서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잘 된다고 하는 가정이지만) 다다를 수 있다.
    – 9장 –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256p)
  •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혼신의 힘을 다했다, 참을 수 있는 한 참았다고 나 나름대로 납득하는 것에 있다. 거기에 있는 실패나 기쁨에서, 구체적인-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되도록 구체적으로-교훈을 배워 나가는 것에 있다. 그리고 시간과 세월을 들여, 그와 같은 레이스를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서 최종적으로는 자신 나름으로 충분히 납득하는 그 어딘가의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다. 혹은 가령 조금이라도 그것들과 비슷한 장소에 근접하는 것이다. ( 그렇다, 아마 이쪽이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 (259p)

한 책에 이렇게 빠져 펼치고 나서 한 번도 쉬지않고 책을 덮은 건 정말 오랜만이다. 군복무할 때 비슷한 책을 읽을 때 비슷한 전율을 느끼곤 했는데, 약 4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스스로’ 챙겨서 운동을 하기 시작한 현재의 나에게는 이 책이 그 어떤 책보다 더 와닿게 된 것 같다.

운동을 처음 할때만 해도 그랬다. ‘이 힘들고 귀찮은 걸 대체 왜 해야하지?’, ‘이런거 해봐야 1시간 운동하고 30분 오래사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도 같은 시간동안 놀면 훨씬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지.

2월 말 전역을 하고부터 생각을 조금 바꿔봤다. 이제 운동 같이 하자는 사람도 없다. 당연하지만 누가 시키지도 않는다. 옆에서 봐주고 코칭해주고 멘토처럼 붙어주는 사람도 없다. ‘굳이 운동을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당연히 들었다.

처음 목표는 체중 감량이었다. 맨날 컴퓨터 앞에만 앉아서 웹서핑이나 하고, 코딩이나 하고 하다보니 체중이 불어나는 건 피할 수 없었고 체력적으로도 안좋아지는게 살짝씩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그냥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하다보니 ‘재미’란걸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이 왔다. 어떻게 보면 미쳤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지금은 운동하는 시간이 즐겁다. 물론 할때는 힘들다. 그런데 과정 하나하나를 마칠 때마다 즐겁다.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더 즐겁게 느껴진다. ‘내가 이걸?’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래도 지난 달의 나보다는 좋아졌네!’ 하는 생각도 들면서.

그리고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서, 스스로 운동을 시작하곤 한다. 책에서 하루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다’라는 진리이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 ‘누군가 시키기 때문에’ 하기 싫었던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 운동도 똑같았다. 하기 싫은데 누가 하자고 하면 당연히 하기 싫은 욕구가 더 크기 때문에 안하게 된다. 그래서 재미를 찾기 전까지는 습관을 만들었다. 하기 싫어도, 정말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도(죽진 않을테니까), 운동하다가 중간에 토할 것 같아도 절대로 흐름을 끊지 않고, 쉬지 않고 계속해서 했다. 어느 순간부터 운동할 때마다 토할 것 같았던 느낌도 사라졌고, 죽을 것 같은 느낌도 덜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어느 순간부터 “내 스스로 운동이라는 <귀찮고 힘든> 활동을 챙겨서 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많은 것에 공감했고, 많은 것을 새로이 느꼈다. 자신의 한계에 계속해서 도전하는 하루키. 그리고 육체적인 고난이 찾아왔을 때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다짐하고 극복하는 하루키. 그리고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말하는 하루키.

Posted by:ssut (SuHun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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